폭스바겐은 독일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이다. 딱정벌레(비틀즈)라는 혁신적인 자동차를 만들어 미국 시장을 석권했던 영예로운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1990년대 이후 정체의 위기를 맞게 된다. 유럽 자동차산업의 전반적 침체로 인해 생산량이 대폭 감소한 반면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향상되어 30% 이상의 잉여인력이 발생하는 등 경영난을 겪게 된 것이다. 실제로 1995년 말 폭스바겐의 총 고용 인력 10만 명중 31,400명이 유휴 인력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의 대량해고는 사회적 영향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여 폭스바겐의 경영진은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공유를 노조 측에 요구했다. 노조도 고용유지를 위해서는 근로시간 단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고 결국 ’93년과 ’95년 두 번에 걸쳐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의 주요 내용으로는 우선 주 4일 근로제도를 도입하여 주당 근로시간을 일일 7.2시간 주당 28.8시간으로 조정했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임금을 10% 삭감했으며 여러 수당을 12등분하여 매월 지급함으로써 월 수령액은 변화가 없도록 조치를 했다. 한편 2주간의 특별유급휴가와 휴가수당지급은 폐지하고 협약유효기간 중에는 경제적 이유에 의한 고용 조정은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러한 폭스바겐의 노사협약은 독일의 노사 문화를 바꾸어 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노동시간은 단축된 반면, 임금이 삭감되어 임금 삭감을 통해 일자리 안정을 도모한 것이다. 일자리 안정과 생산비용 절감이라는 노사 양측의 이해가 맞물리며 이러한 윈-윈의 상생 관계는 폭스바겐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폭스바겐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살아남으면서 노사 상생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더욱 야심에 찬 프로젝트를 내 놓았다. 2002년에 발표한 이른바 5000X5000 모델이다. 근로자당 월 5,000 마르크의 급여로 5,000명의 실업자를 고용한다는 내용이다. 월 5,000 마르크의 급여 수준은 독일의 자동차 분야 근로자 평균 임금의 5분의 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즉 고용을 늘리는 대신 임금을 낮춤으로써 고용 안정성과 인건비 절감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5000X5000 모델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새로운 노사 화합 모델로 제시되며 다른 기업 및 노조, 정부의 깊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5000X5000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실업자 고용에 있다.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임금 경쟁력 상실로 인해 실업이 만연해 있는 독일 경제에 있어 고용 확대만큼 사회적 관심을 끄는 것은 없을 것이다. 폭스바겐은 2002년 하반기에 3,500명의 실업자를 볼프스부르크 공장에 고용해 폭스바겐 미니밴을 매일 1,000대씩 생산했으며, 미니버스를 생산해 내기 위해 하노버 공장에 1,500명을 추가로 고용했다.
두 번째로 고용시간 연장을 추진했다. 일반적으로 유로지역 국가들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다. 독일과 프랑스의 노동시간은 1,400시간으로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의 74% 수준에 불과하며, 같은 선진국인 미국(1800시간) 등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노동 투입 시간의 축소는 미국 등 경쟁지역과의 성장률 격차를 초래한 중요한 요인으로 제시되고 있다. 폭스바겐은 90년대 초반 근로시간 감축과 임금삭감을 동시에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는 인건비 부담과 경쟁력 상실을 감내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평균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하고 최대 토요일 오전근무를 포함하여 42시간 근무하도록 함으로써 노동시간을 연장했다. 이와 함께 연간 200 노동시간을 적립할 수 있는 ‘노동시간 계좌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BMW가 추진한 방식을 본 딴 것이다. 즉 주문량이 많아 노동시간이 주당 35시간을 초과했을 경우 추가시간을 개인 계좌에 저축하고, 주문량이 줄어들 때 이 계좌에 저축된 시간을 개인 휴가로 활용하며, 추가 근무 시간에 대해서는 잔업 수당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탄력적으로 노동시간을 조정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셋째, 5000×5000 모델은 직업 훈련을 강조한다. 신규 고용된 실업자들은 생산 공정에 투입되기 이전에 3개월간 기본적인 직업훈련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이 3개월 기간 동안 산업 및 직장에의 적응 훈련을 받게 되며, 이는 개인의 인적 자본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취업 이전뿐만 아니라 실제 생산 현장에 투입된 이후에도 노동자들은 지속적인 직업훈련을 받도록 되어 있다.
넷째, 폭스바겐은 조직 분위기 쇄신을 통해 효율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추구했다. 인간적이고 우호적인 노동(humane and decent working)을 원하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효율적인 생산 프로세스를 위한 제반 인프라를 구축해 나갔다. 폭스바겐은 조립에서 판매에 이르는 생산전반에 걸쳐 효율성과 생산성의 증대를 도모했다. 이러한 효율적인 공정을 통해 독일 내의 생산이 경쟁사의 동유럽에서의 생산과 비교해서 성공적으로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작업조직을 재구성하여 근로자들을 팀 형식으로 조직화하고 공장 내의 위계구조는 3단계로 축소했다. 이러한 팀제와 조직단계 축소를 통해 개인의 책임을 강화하며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고 학습을 촉진했다.
폭스바겐의 모델은 노사 모두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상생과 윈윈의 전략을 담고 있다. 고용의 보호와 직업 훈련의 기회 제공, 그리고 지나친 임금 상승 욕구 억제의 기본 원칙을 통해 상호호혜를 추구하는 미래지향적 노사관계의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폭스바겐의 5000x5000 모델이 아직 완전히 정착된 것은 아니다. 최근 독일 경제의 지속적인 침체와 인건비가 저렴한 동구권 국가의 도전으로 전반적인 독일 자동차업계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는 가운데 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노조와 인건비 절감을 주장하는 경영진 측의 대립이 재연될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상호호혜의 원칙을 통해 노사합의를 도출하는 폭스바겐의 전통이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최근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5000x5000 모델의 정신은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상생의 노사 관계 : 폭스바겐의 5000 x 5000 모델
사내하청 차별시정 명령 
이랜드 사태의 종료 
